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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리뷰

세 번째 살인 - 남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권리는 어디서 오는가

Essential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배우 :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히로세 스즈 등


남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권리는 어디서 오는가.

 

영화감독이기 이전 저널리스트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묻는다. 어쩌면 문명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생활 스킬 중 하나인 상대방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 이기적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먼 것 같은 이 행동은 자칫하면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심하게 생각했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점과 함께, 일본의 사법체계의 부조리를 같이 엮어 만든 영화가 바로 '세 번째 살인'이다.

 

영화는 미스미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때문에 사형이 구형될 게 뻔한 미스미의 변호사인 시게모리가 그를 만나 진술을 들으면서 점점 진실은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영화 흐름에 따라 퍼즐이 맞춰지며 한 쪽으로 온정과 연민이 치우쳐가는 '좋은 시나리오'가 만들어 질 때, 미스미의 질문으로 환기시키며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는 관객을 성찰하게끔 유도한다. 일종의 소격효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극 중 몇 번씩 등장하는 구치소 접견실 시퀀스는 시게모리와 미스미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척력, 그리고 시게모리의 일말의 희망을 바라는 인력 사이의 미묘한 교감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유리에 비춰진 한 인물의 얼굴에 다가가 겹쳐질 것만 같다가도 결국 맞춰지지 못해 뒤로 슥 물러나는 마지막 접견 시퀀스는 영화 전반의 모호함 가운데 끌어올린 감정의 극한으로,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기폭제이다. 두 인물의 대화,표정,온도를 구태여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카메라 워크만으로 자연스레 알아차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자기 일 밖에 모르던 인물이 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남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인물이 (타인을 위해-?-)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는 인물들의 변화도 매우 흥미롭다.

결국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등 사건의 진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추측되는 정황들은 있지만 사실 진범과 그 정황은 중요하지 않다. 모호함이라는 이름의 자욱한 안개, 그 속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 사법체계와 타인을 멋대로 재단하고 정의내려버리는 인간의 이기적인 자화상을 꼬집고 관객들에게 되묻는 날 선 물음표만을 던질 뿐이다.

 

그 물음표의 시작은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 미스미가 젊은 시절 저질렀던 첫 번째 살인, 미스미 혹은 사키에 혹은 다른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로 저지른 두 번째 살인, 그리고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일본 사법체계와 그 사회 속 일원인 시게모리가 저지른 '사회적' 살인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자 감독이 꼬집어 말하고 싶었던 '세 번째 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