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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 리뷰

플라워 문 - 망자들의 말없는 절규, 여전히 배어있는 피비린내를 묵묵히 옮겨 적는다.

Ordinary

저자: 데이비드 그랜
출판사: 프시케의 숲
옮긴이: 김승욱


플라워 문(원제: 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20세기 초, 그중에서도 1920년대 오세이지 족의 원인미상 대량살인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미국의 성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름과 그 이면의 비열하고도 잔인한 인간의 내면을 다룬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오세이지 부족 전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의 시작과 그것이 역병처럼 퍼져나가는 핏빛 현장을 보여주고, 2막은 오세이지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되는 탐정 톰 화이트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의 본질과 단서들을 찾아 나아가 그 배후에 있는 근원을 찾아 나아간다. 3부에서는 현재, 즉 잔인하게 죽어나간 피비린내를 아직도 풍기고 있는 것 만 같은 유족들의 이야기를 저자가 직접 찾아 나서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주며 마무리된다.



냉정하게 책의 '재미' 혹은 '흥미'를 따지자면 높은 점수를 받을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보인다.
작가의 서술 방식이 독자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며 목표지점을 향해 이끌어가는 정석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갖추는 것이 아닌, 톰 화이트가 후버 국장에게 보내는 수사 보고서 마냥 딱딱한 어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가장 클 것이며, (작가부터가 별로 서스펜스에 관심을 둔 것 같지도 않다) 마치 '독일'과 '유대인'을 떠올리면 하면 바로 특정 선입견이 생기듯, '미국인'과 '기름'의 연결고리는 자연스럽게 편파적인 시선이 장착되기 마련이기에-극의 중반부, 눈치가 빠른 이들은 이미 극초반부터 특정인물에 대한 의심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련의 과정을 눈치채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 책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후더닛(Whodunnit)도, 응징과 복수의 서부 추리극도, 권선징악의 영웅물도 아닌, 작가의 사회 시사-고발물에 가깝다. 작가는 아직도 수악한 방법으로 죽어간 이들의 피비린내를 잊지 못한 후손들을 대변하여 이제는 벌써 식어버린 오세이지족-더 넓게는 인디언족-에 대한 미국인의 만행과 죄악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지피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은유적으로 담은 3부의 울림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물론 끝까지 작가의 사견보다는 여전히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옮겨 전할 뿐이지만, 후손들의 입과 눈으로 간접적으로 전하고픈 작가의 마음을 어찌 가릴 수가 있으랴.

건강한 작품은 독자들에게 강매하지 않는다. 그저 매대에 올려놓을 뿐.
타 작품들에 비하면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소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작품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여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영화로 예시를 들자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랄까.


작품 외적으로 사견을 조금 적어보자면…

이상하게도 요즈음에는 대서특필되는 비인간적인, 잔인한, 수악한 뉴스들을 보아도 큰 감흥이 없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서도, 요즈음에는 더더욱이 관심도 안 갈뿐더러, 개의치 않는다. 반대로 친누나는 뉴스에서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가 보도되면 밥을 먹다가도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성향차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주제이지만, 반대로 내면의 '나'가 그리 선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심심해서, 장난 삼아 가볍게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내가 저 상황에 놓여있었다면?'으로부터 시작했던 상상의 나래는 거의 항상 '그들도 나름의 사유가 있진 않았을까?'로 귀결되곤 했다. 나 같았어도 결과가 큰 폭으로 바뀌지 않을 느낌이 강했기 때문일까.

이러한 사고는 '모두가 각자의 사연이 있다'로부터 발돋움하여, '너와 나는 다르다'를 거쳐 '우리는 서로 다른 개개인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로 발전하여 조금 이상하지만 '내가 남의 삶을 쉽사리(혹은 굳이) 평가하고 재단해서는 안된다'로 정리되었고, 아직도 나의 신조의 대부분의 영역을 채우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글쎄, 내가 그 당시 포허스카에 살고 있던 백인 남자였다면 당당하고 솔직하게 정의를 표방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

뭐 물론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을 수도 없고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끔찍한 것이다-라는 당연한 건 굳이 입이 아프게 말 안해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