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영화 리뷰

패스트 라이브즈 - 노라에서 남편으로 시점이 바뀐 이후부터 무서운 속도로 전후사정들이 퇴색되어버린다

Ordinary

감독: 셀린 송

배우: 그레타 리 유태오 등


어떤 얘기를 하고 싶고, 무슨 감정을 영화에 녹여내고 싶은지 충분히 알겠다.

다만 시점을 약간만 바꾼다면 이야기의 온도가 확 달라져버린다.

 

노라-해성의 일차원적인 관계에서 아서라는 세 번째 존재가 개입하면서부터 문제는 발생한다. 정확히는 중반부 침대에서 잠을 설치는 아서의 속마음을 전달하는 씬부터이다. 평소에 자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모국어로 잠꼬대를 할 때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세계가 두렵다고, 아서는 고백한다. 또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에 내가 아닌 다른 이었어도 그 사람과 지금처럼 행복할지를 묻는 그는 해성의 이야기를 듣기 이전부터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에 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라의 이타적이지 못한(또는 상대에게 배려심이 부족한) 몇 가지 선택들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노라와 해성의 애틋한 감정들이 도리어 ‘정신적 불륜’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평생을 함께할 아내에게는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이 있고, 나는 모르는 그 모습을 아는 첫사랑을 만나러 간다는 것. 이 찜찜한 상황에서의 양가적인 감정의 화룡점정은 후반부 2차로 바를 갔을 때 여실히 드러난다. 완전히 소외되어 버린 아서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혹시 아는가? 3명 사이의 관계를 멋대로 추측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아서가 느끼는 심정이며 그를 바탕으로 상상하고 있는 장면일지도.

물론 20여 년 전의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는 등의 전후이해관계가 있다한들 이는 사람 대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심적으로 힘들어도 사랑하는 아내의 감정을 지켜주기 위해 허락한 아서의 선택처럼 말이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니만큼.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을, 또 바에서 소외된 채 힘들어하는 모습을, 결국엔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부축할 수밖에 없는 아서를 영화에 기워낸 것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과 속죄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때처럼 아직도 병풍 또는 소외시켜도 되는 이로 여긴 것인지.


너무 염세적이라고, 또 포커스가 맥락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아서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그들의 이야기가 하등 상관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