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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리뷰

플라워 킬링 문 - 스콜세시답지 않게 노골적이고 단조로운 미국 서사 신파극

Ordinary

감독 : 마틴 스콜세시
배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제시 플레먼스, 릴리 글래드스톤 등


백인들의 서부개척에 밀려 외딴 지역으로 밀려난 인디언들 중 한 부족이었던 오세이지족들은 그들의 땅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석유덕에 순식간에 미국 내에서 가장 부유한 일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돈이 꼬이면 뱀들도 꼬인다 했던가. 그들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는 개척자들의 계략으로 오세이지족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족쇄를 걸쳐 그들을 수족처럼 관리하고 있고, 그에 그치지 않고 하나둘씩 원인미상의 오세이지족이 죽는 대규모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수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오세이지 연쇄살인사건의 주체가 짙은 안갯속에만 존재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돈을 노리는 다분히 노골적인 그들의 타살 목적 때문에 의심만이 커져갈 뿐이다. 오세이지족 몇몇은 자신이 다음 표적이 될까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방 안에 갇혀 살며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일부는 자금을 모아 정부와 사설탐정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다. 어느새 너무 강해진 개척자들의 착취아래 그들은 그저 숨죽이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투입된 톰 화이트가 등장하면서 오세이지 카운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그의 비중이 대폭 축소되어 형식적인 역할만을 다할 뿐인 형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로 하여금 자욱하게 깔린 안개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며 기름과 미국 역사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비극의 이면을 헤집어 나가는 방식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막연한 미련이 남는다. 원작처럼 말이다.

원작의 서술 구성을 전부 배제하고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한 어니스트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의 감정적인 곡선으로 새롭게 각색한 데에는 스콜세시 감독의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어니스트 버크하트는 현재 미국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라는 표어를 앞세워 서부로 개척해 나아간 미국의 건설신화 뒤에 가려져있는, 피와 상처로 가득한 환부를 드러내며 아메리칸드림은 사실 그들이 억압하고 착취한 피로 건설되었다는 미국인들의 민낯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기 위함이다.

 

결과론적으로 어니스트 버크하트의 진심이 어떠했든 그와 착취자들의 과오는 미국인들이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악행일 것이오, 종반부 모종의 이유로 결심하여 진술을 바꾸는 그의 진심은 그들의 속죄(혹은 변명)이리라.


하지만 사유할 시간과 공간을 두지 않은 채 주입식으로 내뱉는 프로파간다들은 목구멍에 가루약을 꽂아 넣을 때처럼 거부반응이 먼저 일어나기 마련이다. 스콜세시 감독이 등판하면서까지 그토록 설파하고자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작품 본연의 성질을 바라보지 않고 원작 혹은 스콜세시의 전작들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필연적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사견을 읊어보자며 그들은 너무나도 평면적이다. 그의 전작들, 멀리 가지 않고 당장 '아이리시맨'을 보더라도 프랭크 시런의 청년기부터 중장년, 노년기를 거치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 제각각의 성격과 영향력을 되돌이켜보시라. 톰 화이트와 에드가 후버, 켈시 모리슨과 원작 3부에서 꼬집는 다른 '킹 헤일'들을 이런 식으로 탈락시키거나 축소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3가지의 표정으로 일관하는 릴리 글래드스톤의 매너리즘적인 연기와 스콜세시 감독답지 않게 군살이 더러 있는 모습까지 눈에 밟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원작을 먼저 접한 한 관객으로서의 푸념일지도 모른다.

 

분명 그의 영화적 언어와 전달법은 특정 고지를 넘어서 아예 통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극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는 미학적으로도 매우 빼어나며, 영화 전반의 연출과 그의 언어가 고급지게 깔려있다. 또한 개봉 몇 달 전 타계하여 유작이 되어버린 로비 로버트슨의 웅장하면서도 처연한 스코어가 시종일관 관객들을 작품 내면으로 견인하며, 거의 반 세기를 걸쳐 활동하고 있는 대 배우 로버트 드 니로에게서 아직도 새로운 마스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위력에 다시금 놀라고, 또 놀란다. 

 

정리하자면 그렇다. 스콜세시답게 작품의 체급은 건실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메시지와 의미를 표방하여 더 높게 평가할 순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