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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 리뷰

7년의 밤 - 직설적인 묘사와 몽환적인 비유로 이끌어낸 심오한 톤앤매너

Ordinary

저자: 정유정

출판사: 은행나무


강렬한 서문과 프롤로그. 아이를 묘사한 것부터 이미 빠져들었다. 특히 [나는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와 같이 시작부터 독자의 눈을 휘어잡고 이후에도 시종일관 쉽사리 놓아주지 않으며, [일제히 쏟아지는 카메라들의 섬광 앞에 빛의 바다에서 홀로 섬이 되었다]라는 구절처럼 훌륭한 비유적 표현으로 현재의 심정과 과거의 심정(복선)을 포착하여 끄집어낸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인력과 누군가를 해치려는 척력의 대결은 언제나 흥미로운 구도이다. 돌이 킬 수 없는 사건을 계기로 서로 폭주해가며, 결국 벽을 부수고 으깨지는 '파국'으로 치닫고 나서야 멈출 수 있는 광기를 보여주는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이에 밀리지 않고 정유정 작가는 힘 있고 추진력 강한 어투, 현실감과 몽환적 분위기가 혼재해 있는 묘사는 극의 엔진과 연료 역할을 하며, 이는 곧 내러티브의 탄탄함과 파괴력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7년의 밤은 -초장부터 결말을 미리 공포하는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초반부 간단명료한 명제 하나만을 남기고, 그 뒤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퍼트리며 막을 올린다. 그러나 강렬하고 속도감 있는 초중반부 많은 물음표들을 소개해줄 때까지의 톤 앤 모드가,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때까지 유지되지 못한다. 주로 안승환, 오영재, 최현수 셋이서 바통 터치를 하며 극이 흘러가지만 연계보단 각자의 뒷배경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나열하기 때문. 부연설명 없이 줄줄이 설명만 하는 다큐는 재미없듯, 7년의 밤 또한 자연스레 서사에 대한 흥미가 서서히 무뎌지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음표가 끝나면 초반부의 강렬하고 파격적이었던 톤 앤 모드의 빛이 희미해질까 염려했는지, 작가는 계속해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뒤바뀐 그 직후에 계속해서 조그만한 물음표를 욱여넣었다. 좋게 말하자면 끈질기고, 반대로 말하자면 질린다. 잘 팔리는 메뉴도 변함없으면 질리기 마련인데, 중후반부 물음표들에게서는 초반부에서의 질문, 의문으로 인한 충격, 흥미의 수위가 전과 같지 않았다. 아니, 같을 수가 없었다.

 

극의 후반부까지 물음표를 계속해서 내어놓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한 능력과 구간 조성이 칼큼하지 않다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재주이다. 정유정 작가가 놓친 점은, 물음표들의 형식이 같을 경우 지루함과 독자들이 '구태여' 그 물음표라는 커튼 뒤를 헤쳐 볼 생각이 들 구실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리해보자면 - 직설적인 묘사와 몽환적인 색깔의 비유와, 속도감과 추진력 있는 어투 등으로 어둡고 심오한 분위기의 톤 앤 매너를 끌어내었음에도, 그 방향과 조절에 있어서 미숙하여 원 장점들이 퇴색되어버린 평작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