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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리뷰

사이버펑크 2077 - 매력적이게 차려진 밥상임에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 않는 풍미

Ordinary

개발: CD Projekt

유통: H2 인터렉티브


+ 방대하고 매력적인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무대 구현

+ 특성과 사이버웨어, 아이템의 세분화로 인한 다양한 액션 빌드와 미션 수행 전략

+ 특정 인물, 집단에 대한 여러 분기점들과 합리적인 파급효과


- 강제되는 1인칭 시점

- 파편적인 메인 스토리라인

- 반복적인 의뢰 및 사이드 퀘스트들

- 아직 남아있는 자잘한 버그들


 

출시 전후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사이버펑크 2077

 

출시 이전 개발진의 엄청난 프로모션과 파격적인 트레일러 등으로 기대치를 하늘에 뚫을 정도로 높던 CD 프로젝트 신보. 연기에 연기를 거듭함에도 일반 회사도 아닌 무려 위쳐의 개발사였기에, 전작처럼 명작이 되리란 믿음이 굳건하던 이들과 설레발이라며 걱정하던 이들의 긴장감이 팽팽하던 2020년이 기억이 생생하다. 사이버펑크 2077은 결국 출시 후 시장에 발을 들어서자마자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충격적인 데뷔를 했지만 채 열흘도 가지 않아 대규모 환불사태라는 게임계 손꼽히는 흑역사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주요 논쟁거리는 게임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꽉꽉 들어차있는 수많은 버그들과 질 낮은 최적화, 프로모션과는 다른 게임성과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 등이 있었다. 물론 나는 2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게임을 하기 때문에 발매 직후의 조건과는 다르겠지만 게임을 해보지 않은 나도 다양한 매체에서 혹평하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봤던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한 선입견과 불안함 때문인지, 화려한 전적 때문에 여러 게임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옵션이 아니었던 사이버펑크 2077은 그렇게 쉽게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만 갔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큰 화제가 됐었던 사이버펑크:엣지러너를 본 이후에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콘셉트에 큰 흥미를 느껴 자연스레 게임까지 눈길이 쏠리기 시작했다. 바이오쇼크 시리즈로 스팀펑크와 디젤펑크 세계관도 크게 감명을 받았던 터라, 자연스러웠던 탓도 있겠다. 게다가 연말 행사라고 반값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거부감의 벽을 녹이기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던 터. 

 

각설하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우선 게임의 기본이 되는 세계관과 무대는 정말 매력적이다. '사이버펑크'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내건 자신감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장르적 매력과 깊이감을 비디오게임 속에 녹여내어 플레이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간대별, 날씨별로 달라지는 나이트시티를 거니는 재미도 있으며, 정 반대인 배드랜드에서 드라이브도 훌륭하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무대는 단연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밤 걷는 골목길이 백미.

 

때깔이 고우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아무리 게임성이 제1 기준이 되어버린 요즈음이라고는 하지만, 세계관과 무대가 갖는 효과와 영향력은 아직 굳건하다.

그렇다고 사이버펑크 2077이 무대배경만 뛰어나고 게임성은 별로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세분화된 특전과 특성들, 개성 있는 아이템과 사이버웨어들을 결합하여 -사이버펑크 세계관처럼- 자신의 입맛대로 캐릭터를 개조할 수 있으며, 콘셉트에 맞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가령 미션을 수행하더라도 몰살, 해킹, 비살상등 자신만의 전략을 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보수와 인물들의 대화 및 반응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한다.

 

이는 비단 플레이뿐만 아니라 수없이 등장하는 대화 선택지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분기점에서의 선택에 따라 인물들과 속한 집단의 대우와 태도가 변화하며, 엔딩미션에서의 선택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는 선택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떤 루트든 발생한 파급효과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토리라인에 깊게 몰입하기는 힘든 편이다.

가뜩이나 방대한 세계관과 몇십 명이 넘어가는 주요 인물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를 쫓기도 바쁜데, 메인 퀘스트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파편적이다. 가령 어떠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A를 찾아야 하고, A는 B와 연관되어있는데 B는 C, D 소속이었고, C는 E와 다툼 중이며 D는 행방불명인 상태인 식으로 널브러져 있다. 

 

또 게임 속 V는 어떠한 사건 이후로는 생명의 위기 속에서 찰나를 다투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데, 어떤 미션에서는 오늘내일하고, 어떤 미션에서는 전혀 문제없는 듯한 모습을 하는 등 그 사이 이질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오픈월드의 특성은 살리되, 메인 스토리라인은 선형적인 구조로 구성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곤 한다.

 

사이드 퀘스트 및 의뢰는 몇몇 개를 제외하고는 반복적인 색깔놀이 수준이다. 델라메인을 제외하면 사실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콘셉트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미션은 크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간단히 줄여말하자면,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의 사이드퀘스트 및 의뢰는 분명 마이너스 요소다.

 

1차원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사이버펑크 2077을 플레이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바로 1인칭 시점 플레이이다. 그것도 강제되는.

 

몰입감을 위한 것인지, 게임 플레이 콘셉트를 위한 것인지, 시스템 구현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게임 특성상 3D멀미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 다만 이 부분은 개인의 취향 선호도 차이기 때문에 게임의 마이너스 요소라고는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종합해보자면

 

CD 프로젝트가 구현해낸 사이버펑크틱한 세계관과 무대, 인물들은 매우 매력적이다.

다만 파편적인 메인퀘스트들과 반복적인 사이드퀘스트는 몰입에 방해가 되기에 

다채로운 밥상임에도 음식의 부조화로 인해 매력이 떨어지며

강제되는 1인칭 플레이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올해에 DLC가 출시된다고는 하는데, 판매량과 반응에 따라 사이버펑크 개발진이 손을 뗄 수도 있다는 인터뷰를 보고서 들은 생각은, '이렇게 버리기엔 세계관이 너무 아쉽다'라는 것이었다. 연기를 더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 출시했다면 이보다는 더 나았을까.